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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데드풀의 미친 번역가, 황석희님의 유퀴즈온더블럭 편

by Bookbybooks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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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데드풀의 미친 번역으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 님이 나오셨길래 유튜브로 다시 영상을 돌려보며 내용을 복기해봤다. 17년 차 번역가이자, 영화 번역은 10년 차로 지금껏 500여 편을 번역하셨고, 영화 웜 바디스로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받고 데드풀과 스파이더맨으로 번역 커리어를 이어가며 마블 팬들에게 꼭 필요한 번역가로 자리매김하고 계신다. 영상을 보는 내내 예전에 읽고 글을 남겼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가 생각났는데, 요즘 유행하는 언어의 흐름을 익히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밈등을 숙지하는 거라든지 언어의 해석 자체보단 어떻게 이걸 맛깔나게 글로 재창조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해당 작품의 원작이나 감독의 성향 등을 찾아본다는 부분에서 번역으로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신 분들의 작업 루틴이라는 게 어느 정도 유사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번역가의 삶

 황 번역가님은 대학 3학년부터 번역을 시작하셨고, 처음에는 작업이 없어 다큐 쪽만 계속 맡아왔는데, 여기에서도 5~600여 편을 번역했었다는 걸 봐서는 앞서 영화 번역에서도 일주일에 한 편씩 번역할 정도의 작업량을 보인 걸로 봐선 번역을 시작할 때부터 적어도 작업량에 있어서는 빠지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예전에 나도 영상 번역에 관심이 있어 몇 달간 배워본 적이 있는데, 어쭙잖은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든 해석은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이후 해당 해석본을 글로 레벨 업시키는 게 또 문제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런 실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실력을 발휘할 작업을 줄 수 있는 공급처를 구할 수 있느냐가 일 거다. 사실 번역이라는 게 그렇게 큰 산업이 아니다 보니 당시 내가 번역 학원에서 수강을 할 때에도 대부분 오래된 번역가들의 인맥을 통해 일감을 가져오고 그 일감을 나눠 번역을 하면서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채우고 본인도 좀 더 큰 일을 따오는 형태로 돌아갔었다. 황 번역가가 활동할 때는 더욱더 그러했을 꺼라 생각하니 젊은 시절 앞이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나름대로 번역을 하면서도 다음 일을 어떻게 받고 번역가로서 커리어를 이어갈지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활동 자체가 대부분 현역에 프리랜서 활동이다 보니 본인의 작업물에 대한 프로의 피드백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황 번역가는 영화 번역을 맡기 위해 극장에 나오는 자막을 보며 영화 번역에 쓰이는 포맷들을 익혀 갔었다고 말한다. 물론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익히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힘든 작업이 또 있을까 싶다.

 

해석을 넘어 재창조로

 번역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들이는 에너지를 10이라고 하면, 해석에는 2가 나머지 작업에 8이 소요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영어의 인사말 Hey는 어지간한 상황에서 등장하는데, 그저 나올 때마다 ‘안녕'이라고 표현하는 건 번역가의 실력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말한다. 극 중 상황에 맞춰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런 뉘앙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적확한 표현을 위해 번역가는 늘 새로운 표현을 익히고 또 원작과 감독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원작의 팬덤이 강하거나 메인 캐릭터를 맡은 배우의 인기가 상당할 경우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중의 포화를 제일 먼저 맞을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재 창작물의 특성상 당연히 오역이 있을 수 있고, 이에 따른 악플이나 생채기 또한 적잖이 겪었다는 황 번역가님. 예전엔 이런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인정을 하고 다음에 이런 실수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피드백을 받는 메일을 두고 종종 보곤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억지나 스토킹, 위협을 암시하는 메일도 받다 보니 정신 건강상 지금은 메일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며 예전 마블 시리즈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발생했던 박모 번역가의 엔드게임의 일화가 떠올랐다. 당시 번역자가 원작의 의도를 망친 번역을 했다며 팬들과 네티즌들이 집중 포화가 이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커뮤니티에서는 대표적인 오번역의 예로 언급되고 있고 팬들과 배급사 간 감정 다툼으로 번졌으니 강한 팬덤을 가진 작품이 얼마나 번역하기 어려운지 말 안 해도 알 만하다. 그럼에도 황 번역가는 퀄리티가 안 좋은 번역은 있을 수 있으되 대충 한 번역은 있을 수 없다며 번역가의 고충을 대중들이 조금은 알아줬으면 한다는 말을 더했다.

 

마치며

 자막을 만들며 십여 년을 넘게 살다 보니 이젠 영화를 봐도 자막이 거슬려 힘들다는, 무성 영화를 볼 때 진정으로 힐링이 된다며 웃음 짓는 황석희 번역가. OTT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며 해외의 좋은 영상들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는 요즘, 한국의 많은 콘텐츠 소비자들은 그와 같은 많은 영상 번역가들의 노고 덕분에 웃음 짓고 또 탄성을 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비록 그는 우리들보다 먼저 영상 가편집 본을 보며 스포를 당할지언정 우리에게는 날카롭게 벼린 그만의 찰진 번역으로 다가와 주길 한 번 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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