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주변 추천으로 보게 된 윌 스미스 주연의 '킹 리차드'. 딸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본인의 계획대로 뚝심 있게 가족을 이끌고 가는 한 가장의 모습과 이를 충실히 받아들이며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딸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며 극 중 윌 스미스가 연기했던 리처드 윌리엄스가 보였던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남겨본다.
그는 성공에 대한 정의가 남달랐다.
흔히들 자식이 어떤 부분에서 뛰어난 재능을 선보이게 되면, 많은 부모들은 흥분하고 더욱 더 이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한다. 특히 성공을 위해 경쟁이 필요한 예체능의 경우, 필연적으로 어린 자녀를 경쟁의 상황으로 밀어 넣게 된다. 주변에도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며 지금 이 조치를 하지 않으면 다른 경쟁자보다 뒤처지고 끝내 낙오될 거라 겁을 준다.
그는 기성 세대가 바라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밀어붙일 경우, 너무 빨리 지쳐 부상을 당하거나 마약과 같은 일탈로 빠짐을 경계하며 자신은 자신의 자녀가 너무 어린 시절부터 너무 경쟁적인 환경에 노출되는 걸 피하도록 한다. 대신 본인의 자식들 모두가 현재 자신의 나이에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을 누리고(예를 들면 학교를 다니며 추억을 쌓는 다던지,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한다던지), 해야 할 것(공부, 필수 교양을 쌓는 행위)을 잘 완수했을 때에만 테니스를 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를 방해하는 이들은 다 막았다. 자녀의 빠른 성장을 생각하던 아내도 설득했고, 딸의 폼을 고치려는 코치도 해고 했고, 더 큰 무대에 빨리 서게 해 주겠다는 스폰서의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끊임없이 이를 물고 늘어지는 언론도 늘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극 속에서 그는 딸의 간청에 9여년간 멈췄던 대회 참가를 결국 허락하지만, 그때까지 지켜왔던 그의 고집스러운 계획 덕분에 그녀의 딸의 메타인지와 승리에 대한 믿음은 참가자 그 누구보다 높았고 테니스 실력 또한 우승 후보와 박빙의 경기를 벌일 정도로 성장해있었다.
어느 한 방법에만 얽메이지 않았다.
극 중에서 리처드는 오전에는 직접 만든 리플릿과 함께 딸아이를 가르쳐줄 코치와 스폰서를 찾아다녔고, 오후에는 딸 들과 테니스 코트장에서 연습을 하고, 밤에는 야간 경비원 생활을 하는 지독스럽게 근면한 아버지였다. 딸의 프로모션 비디오까지 본인이 직접 캠코더를 사서 녹화해 코치들에게 보일 정도로 정성이 대단했는데, 이와 함께 자식의 교육(테니스와 그 외 학업까지)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여도 다양한 방법을 찾길 원했다.
유명한 어느 코치와 계약을 하고 연습을 한다고 해도, 그는 캠코더를 들고 경기장에 함께 앉아서 경기를 참관했고, 필요할 경우 끊임없이 중간 중간 딸과 코치에게 코멘트를 했다. 코치가 가르치는 방법에 반하는 의견도 서슴없이 냈고, 필요할 경우 지금 코치와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코치를 찾거나 동시에 복수의 코치에게 레슨을 받도록 조치했다.
이런 그의 접근에 코치 들은 늘 화를 내며 반기를 들었지만, 그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만이 일류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말하며, 자신 역시 계속 공부하고 또 자신의 지식을 업데이트하려 애썼다.
규율과 규칙을 언제든 강조했다.
영화 초반 리처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딸들이 코치가 없는 걸 보고,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여 훈련 스케줄을 만들었고, 두 딸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아버지의 훈련 시간에 참석하여 그의 가르침대로 훈련함을 원칙으로 했다. 이웃 주민이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 같다고 신고할 정도로 철저하게 훈련 스케줄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그는 두 딸을 포함한 나머지 딸 들에게도(영화에서는 다섯 명의 딸이 등장한다.) 늘 겸손하고 진중한 태도를 가지길 원했다. 비록 지금은 가족 모두 흑인 빈민촌인 컴튼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젠가 성공하며 그때를 생각하며 참고 또 자중하길 바랬다. 주니어 대회에 참여해 압도적인 실력으로 승승장구하던 딸들이 들뜬 모습을 보이자,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겸손한 사람만이 진정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거라며 잔소리를 보탰다. 동네 불량배들이 리처드를 무시하고 폭행을 할 때에도 그는 자신이 세운 규칙을 지켰기에 딸들도 그의 말과 행동에 진정성을 의심치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극 중에 그와 딸들을 보면 동네에 사는 다른 주민들과는 다르게 깔끔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는데, 극 중 시대상을 비춰볼 때도 쉽지 않은 태도였을 거라 보인다. 주변 불량배들이나 옆집 사람들도 리처드 부부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걸 보면 규율과 규칙, 태도 등을 유독 강조하며 자식 교육을 해대는 그들과 자신이 비교되기도 했을 거라 생각된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늘 생각하게 했다.
9여년 간의 훈련 생활에 지친 딸이 아버지 리처드에게 자기도 대회에 나가고 싶다며 울면서 부탁하자, 그 역시 눈물을 흘리며 이를 승낙하는데, '너의 성공이 너 혼자만의 성공이 아닌, 흑인 여성 전체의 성공'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생각하라는 말을 더해준다.
또한 언제든 그는 아내와 가족들과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대화하길 즐겼는데, 비록 결정은 그의 고집스러운 독단으로 행해진 적이 많았지만, 아내와 자녀들의 의견을 듣고 녹여낼 수 있는 방향은 없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처드와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2교대 간호사 생활을 하며 가족을 지켜왔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가족 모두가 바라보는 목표가 일치했기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었다고 보인다.
그런 부모의 헌신 덕분에 장녀를 포함한 나머지 딸 들에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테니스에 재능이 있던 동생, 언니를 질시하거나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다. 어쩌면 가족의 화목한 모습 덕분에 두 테니스 여제의 재능도 잘 꽃 피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가족을 위해, 딸들의 올바른 성장과 성공을 위해 리처드는 스스로의 계획 속에서 고난을 기꺼이 감수했다. 영화 이후의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두 테니스 전설이 써내려 간 흔적들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자식을 위해 수 차례 이사를 하며 주변 환경을 챙겼던 맹자의 어머니처럼, 리처드의 교육 역시 서양판 맹모삼천지교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과 자신의 아이를 잘 키워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숭고한 일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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