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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넷플릭스 스텐딩 코미디 시리즈를 보며

by Bookbybooks 202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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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무대 위에 홀로 선 채로 핀 조명 하나와 마이크 한 개에 의지하며 수많은 청중들을 마주한다. 관객들은 무대의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며, 순간순간 스치듯 터지는 펀치라인에 웃음으로 화답한다. 무대의 호스트는 본인의 직접 보고 듣고 만들어낸 이야기 만으로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오롯이 채우고 내려간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인도한 스텐딩 코미디는 언제부턴가 나의 시간을 갉아먹는 즐거운 취미가 되고 있다.

 

준비된 웃음

 

 처음 스텐딩 코미디를 보게 되면 모든 게 다 즉흥적인 애드립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날고 기는 코미디언이라 해도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준비 없이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물론 한 두 번 정도는 순전히 본인의 개인기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미국 전역과 해외를 돌며 공연을 할 정도로 많은 대중에게 노출되다 보면 철저한 준비와 지속적인 변화 없이는 스텐딩 코미디언으로 살아남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가끔 스텐딩 코미디언들이 본인의 쇼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이 타임라인에 뜨곤 하는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묻거나, 자주가는 카페나 음식점 또는 지인들과의 만남 등에서 순간순간 스치는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하거나 녹음, 암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공연 대본 역시 대부분의 경우 쇼 호스트가 짜는데, 입장부터 중간 휴식, 마무리 멘트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어디서 어떤 멘트를 던져 웃음을 만들어낼 것인지, 또 웃음 간에 간격은 어떨지, 혹 해당 멘트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이어 던질 멘트는 무엇인지 등도 계산하는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자유의 웃음

 스텐딩 코미디의 소재는 정말 다양하다. 19금 부터 퀴어, 국적, 성별, 이민 사회 등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웃음을 주기 위해선 그 어떤 성역도 없고 때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나 든다. 8~90년대 정도의 예전 작품들을 보면 지금 시청자가 봤을 때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맨트들도 보이는데, 스텐딩 코미디언들 역시 이를 자각하고 있으며 필요할 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도 하고, 또 이를 희화화해서 더 큰 웃음으로 관객들을 자지러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텐딩 코미디에 대한 시도가 몇 차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아무래도 성역없는 소재, 욕설, 성적인 표현 등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본토의 그것에 비해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역시 그들처럼 적어도 스텐딩 무대에서만큼은 그 어떤 간섭이나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웃음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자조의 웃음

 스텐딩 코미디언들은 종종 본인을 디스하거나 희화화하는 걸 즐긴다. 자기가 얼마나 자조적이고 멍청한 사람인지 강조하며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자조적인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스텐딩 코미디언들의 자조적 웃음이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 생각한다. 볼품없는 나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사실을 남들 앞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대담함. 이런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웃음까지 선사한다는 건 말 그대로 예술의 경지임에 틀림없다.

 

 한 줄의 펀치라인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박스 밖'에서 바라보려 노력하며, 이를 통해 본인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본인이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찾아낸다. 일반인이었다면 숨기고 싶고 들추기 꺼려지는 그 상처들을 그들은 마음껏 헤집고 선 소금까지 뿌려댄다. 그걸 보며 자지러지게 웃는 관객일수록 '결국 이걸 보고 웃는 나도 저 사람이랑 별반 다를 거 없이 바보 같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되고 더욱더 열광하게 된다. 일종의 서양식 '살풀이'라고나 할까?

 

마치며

 국내에서도 몇 몇 코미디언들의 스텐딩 코미디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스텐딩 코미디를 더 잘 받아들이기엔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미국처럼 우리도 스텐딩 코미디언 지망생들이 맘 편히 설 수 있는 소규모 공간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코미디언들도 고삐 풀린 말처럼 아무런 간섭이나 제재 없이 신나게 그들만의 웃음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를 즐기러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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